기독교 상담에서의 공감과 직면
기독교 상담에서의 공감과 직면
김수연 교수(Ph.D.,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교수)
I. 여는 글
상담기술의 두 날개 - 공감과 직면
기독교 상담의 정체성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는 상담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내담자의 괴로운 사연을 들으면서“같은 인간으로서 내담자의 편을 들 것인가!”아니면“진리의 말씀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 편을 들 것인가!”하는 고민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만약 공감을 강조하는 상담자라면, 내담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그 감정을 최대한 수용해주고 표현하게 하는데 초점을 둘 것이다. 그래서 내담자가 존중받는 느낌을 갖고 자신 속에 숨겨진 가치와 성장 동기를 발견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길을 스스로 헤쳐 나가기를 바랄 것이다. 반면, 직면을 강조하는 상담자라면 내담자의 사연을 잘 듣고 공감만 하고 끝나는 상담의 한계를 아쉬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깊은 웅덩이에 빠진 사람이 스스로 나올 수 없고 밖에서부터 원조가 있어야 나올 수 있기에, 내담자의 내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밖에서 진리와 지혜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공감과 직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에 있어서 불리한 경우를 가정하면, 공감만을 강조하는 상담자는 내담자의 감정이나 내용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반영하다가 상담을 끝낼 수도 있으며, 직면을 강조하는 상담자는 내담자에 대한 이해와 탐색을 깊게 하지 못하고 서둘러 정답을 제시하려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공감과 직면의 적절성은 덮어두고서라도, 공감이나 직면을 균형 있게 구사하지 못했을 때, 상담자에게는 늘 두 종류의 회한(“좀 더 들이댈 걸”또는“좀 더 기다릴 걸”)이 마음 한 구석에서 고개를 든다. 공감과 직면의 균형을 어떻게 하면 유지할 수 있을까? 공감과 직면의 상담기술을 구사함에 있어서 그 균형을 조절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본 논문에서는 공감과 직면이라는 상담기술적인 주제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이념적인 과제 즉 기독교 상담의 정체성을 구현해 나갈 수 실천적 방안에 대하여서도 생각해 보고자 한다.
Ⅱ. 펴는 글
1. 공감과 직면의 조율키: 상담과정
전쟁 용어로 표현할 때, 전술(tactics)은 전략(strategy)에 따라 달라진다. 이와 같이 상담기술 또한 상담의 과정 및 목표에 따라 달라진다. 상담기술의 양 날개가 되는 공감과 직면의 기법을 조율하는 기준은 지금 내담자와의 상호작용이 상담의 전체 과정 중 어떤 국면에서 일어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상담의 과정은 크게 (1) 관계형성, (2) 자료 수집을 위한 탐색과정, (3) 직면 및 해석에 의한 통찰과정 (4) 훈습과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i). 이 구도 속에서 볼 것 같으면, 공감은 주로 관계형성의 단계에 있어서 주된 무기가 된다. 반면 직면은 통찰단계의 주된 무기가 된다.
상담초기 내담자의 양가감정 (평가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바라는 모순된 감정의 공존상태)를 동시에 만족시켜줄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이 반영이다. 반영이란, 문자 그대로 거울이 그 앞에 나타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주듯이, 상담자가 거울처럼 내담자를 비추어 주는 것이다. 잠언 27장 19절의 말씀처럼, 사람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을 비추어 줄 때 서로의 마음이 같아지는 일이 일어난다. 이렇게 마음이 같아지는 공감을 만들어내기 위한 상담자의 반영은 주로 내담자가 표현한 내용이나 감정을 그대로, 또는 의역하여, 때론 요약하여 돌려줌으로써 실현된다. 반영은 3차원에서 규명될 수 있는데,ii) (1) 언어적인 차원에서 보면 평가적이기 보다 묘사적이다. (2) 감수성의 차원에서 보면, 상담자가 내담자의 내면을 포착하는 것이며, 내담자는 미쳐 자각하지 못 했던 면을 알게 되거나 이미 느끼고 있던 것에 대한 타당성(“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느끼는구나!”또는“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도 결코 이상한 게 아니구나!”)을 확인한다. (3)의사소통의 차원에서 보면, 상담자가 내담자에 대한 이해를 전달하는 것이다. 반영의 효과로서 상담자는 내담자의 내면세계 속으로 한발씩 들어가며, 내담자는 상담자가 자기세계 속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누적됨으로써 신뢰관계가 깊어지고 치료동맹이 이루어지면, 상담자의 반영은 단순히 내담자가 하는 이야기의 표면을 재 진술 하는 것을 넘어서서 깊은 수준으로 나아간다. 내담자의 말(예:“주말이면 식구들이 날 가만 내버려 두지를 않아요.”)속에 깔려 있는 감정이나 태도를 포착하여, 표현된 것 이면의 것을 비추어 전달하는 것(예:“주말이면 식구들과 함께 시간을 갖고 싶으시군요.”또는“식구들이 아빠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래도 기분이 좋으신가보네요.”) 까지 포함한다.iii)
이 때 내담자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온전한 장면과 각본을 그릴 수 없을 때, 상담자는 구체화 또는 명료화 질문을 던짐으로써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내담자의 자기탐색을 촉구하게 된다. 이것은 상담자 편에서 보면 내담자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자료수집의 과정이다. 반면, 내담자 편에서 보면, 상담자의 질문을 통하여 내담자는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간과한 부분- 상황이나 주변인물에 대한 지각, 감정, 사고 등에 대하여 비로소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질문에 따라서는 내담자가 이제까지 스스로에게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는 질문일 가능성도 있다. 옳고 그름만을 따지면 살아온 사람에게“그 때 어떻게 느끼셨어요?”라고 묻거나, 남들의 관점에서만 상황을 생각해온 사람에게“정작(당신)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라고 묻는 질문은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도전이 된다.
자료수집의 탐색과정에서 내담자의 사고, 감정, 동기, 행동들 사이에서 발견하게 되는 모순이나 불일치(예:“아내가 자주 집을 비우기는 하지만 결혼생활에 불만은 없습니다.”또는“저는 미팅에 나가지만 이성 친구를 사귀고 싶지는 않습니다.”)는 내담자의 내적 역동(인과관계)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때 상담자는 상담의 목표와 관련하여 변화를 촉진하는 동기유발 단서로 불일치나 모순, 나아가서는 그 저변에 작용하는 방어를 지적하게 된다. 이것은 내담자로 하여금 자신의 내적 진실, 곧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대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 점에서 직면이란, 내담자가 지금껏 보지 못하던 것, 혹은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것,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본다’하면서도 사실은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것을 비로소 보게 만드는 상담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직면을 구사하기 위해서 상담자는 자료수집의 탐색 과정에서 여러 가지 가능한 가설을 세워가며 내담자에 대한 전체 그림을 그려나가는 해석 작업(개념화 작업으로, 상담기술로서의 해석, 즉 내담자에게 제공된 해석과 분리되지는 않으나 구별된다.)을 병행해야 한다. 내담자에 대한 전체그림 속에서 모순이나 불일치가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내담자에게 있어서는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보지 않으려던 것을 볼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직면이란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직면을 감당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는 공감 반영과 함께 진행하면서 그 충격을 흡수해 주어야 한다. 직면에 따르는 모든 감정들(놀람, 수치, 당혹, 자책, 슬픔, 절망 등)을 흡수해 주거나 받아줄 수 있는 스펀지나 쿠숀으로써의 공감반응은 필수적이다. 직면이 초래할 저항의 강도란 상담을 계속 진행하는 것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이 때 상담자나 내담자에게나 저항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신뢰와 치료동맹이 중요한 변수가 된다.
직면으로 인하여 본격적으로 돌입하게 되는 통찰의 과정은 해석기법을 통하여 더욱 온전해진다. 상담기술로서의 해석이란“내담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진술을 하는 것이다.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나 반응들 사이를 연결시켜 사고와 감정, 행동에 일관된 주제나 패턴을 지적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인과관계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방어나 저항을 설명하고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주는 것이다.”iv) 해석을 통하여 내담자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하던 새로운 것을 듣고 경험하게 되는 셈이다. 상담자편에서 보면 해석은 좀더‘정교화된 직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보면 직면은 해석과 더불어 변화를 일으키는 시발점인 통찰의 계기를 마련한다. 나아가 통찰이 훈습을 통하여 삶속에 정착하게 되면서 상담이 종결될 때, 이상적인 상담과정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약술한 상담의 과정은 어떤 점에서 공감과 직면을 조율하는 키가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상담과정의 핵심을 무엇이라 규명할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모든 상담기법이 동원되어 결국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과정은 한마디로‘본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본다는 관점에서 공감과 직면의 기법을 재정의해 보면, 공감반영이란, 내담자가 본 것을 상담자가 보고 이것을 내담자로 하여금 다시 보게 하는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자기가 볼 때의 의식 상태는‘I’이지만, 상담자의 반영을 통하여 다시 보게 되는 자기란‘self’의 상태로 전환된다. 이것이 상담에 있어서 갖는 의미는, 내담자가 자신을 대상화하여 객관화시켜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자신과 거리를 두고 바라봄(distanzierung)은 이제 자기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초월(transzendenz)을 향한 준비 작업이 된다.v) 초월을 향한 더욱 직접적이고 강력한 무기인 직면은 해석과 함께 자신의 경계를 대면하며 그 경계를 넘어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을 열어준다.‘본다’는 것으로 요약된 상담과정이 공감과 직면의 조율키가 되는 것은, 내담자가 현재 보고 있는 정도, 곧 시력에 따라‘보아야 할 것’의 논리적 순서를 가늠케 해준다는데 근거한다. 즉 먼저 자기의 무엇부터 보게 할 것인가, 또는 자기의 경계 너머 어디를 보게 할 것인가 하는 등의 통찰 수위와 진도를 조정하는 것은 상담의 역동적 과정에 대한 감각에 기초한다.
여기서 기독교 상담과 일반심리 상담의 통합논쟁의 관점에서 볼 때, ‘보게 해준다’는 기능은 다분히 일반 상담과 기독교 상담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기법적인 면에서의 교집합 영역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자기의 무엇을 보게 하며, 자기의 경계를 무엇으로 잡고, 그 너머의 무엇을 보게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상담의 목표설정을 향한 질문은 기독교 상담의 고유성과 정체성에 기초하여 다루어질 수 있는 영역이다. 본다는 관점에서 기독교 상담의 목표를 규명하기에 앞서‘보게 해준다’는 것과 관련된 상당히 효과적인 상담기법을 두 가지 더 추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이 기법들은 어쩌면 지혜롭게 공감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지혜롭게 직면하는 방편들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공감과 직면의 보조날개: 즉시성과 자기개방
즉시성(immediacy)이란 상담자가 상담 장면에서 내담자와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특히 내담자의 대인관계 양식에 초점을 맞춘 상담자의 자기개방이라 볼 수 있다. 즉시성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vi)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맺어온 지금까지의 전반적인 관계양식에 초점을 맞추는 즉시성(예:“지금까지 제가 자매님을 너무 학생처럼 대하고 있다고 생각되요. 그리고 자매님은 저를 마치 선생님처럼 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상담이 진전이 되지 않고, 서로 모범답안만 쓰려는 거 같아요.”)과 방금 있었던 사건에 초점을 맞추는‘여기 그리고 지금의 즉시성’(예:“처음에는 이야기가 생생했는데, 차츰 겉도는 것 같아 지루해 지는 느낌이 드네요.”또는“그렇게 자꾸 확인하며 물으니까 제가 뭔가를 잘 못한 거 같은 느낌이 드네요.”)이 있다. 상담자의 즉시성 반응은 내담자의 대인관계 양식을 상담자가 먼저 자각하고 명료화해주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내담자는 자기 행동과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피드백을 받는 셈이 된다. 일상생활에서 아무도 직접 말해주지 않았으나, 상담자로부터 완곡하지만 솔직한 반응을 듣는 것이다. 이 때 비로소 내담자는 자신이 대인관계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보게 되는 것이다. 즉시성 반응으로 내담자는 상담 장면 밖에서의 자신의 대인관계 양식을 되짚어 보며 그 밑에 깔려 있는 역동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상담자가 즉시성 반응을 하기 위해서 관계 속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자신에게 어떻게 느껴지고 있는지 끊임없이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적확하며 주효한 것이 되기 위해서 상담자는 그만큼 역전이(countertransference), 곧 자기갈등을 내담자와의 관계에 투사할 정도의 미혹에서는 벗어나 있어야 할 것이다vii).
자기개방(self-disclosure)이란 상담 장면에서 내담자가 자신의 마음을 열고 문제를 내어놓을 뿐만 아니라 고난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이겨낼 수 있다는 소망을 줄 것이라고 판단될 때, 상담자가 자신의 인간적 면모나 통찰의 경험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나도 고 3때 너무 불안해서 가슴이 답답하고 귀에서는 윙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지. 이러다 미치는 거 아닌가 두려웠었지. 그러나 그 때문에 오히려 나 자신의 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는 계기가 되었지.”)viii) 내담자의 무엇에 대하여 상담자 자신의 무엇을 개방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효과를 나타낸다.‘치유 받은 치유자’로서 상담자의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을 드러내는 자기개방은 내담자로 하여금 동지의식을 느끼게 하며 상담동기를 고양시킬 것이다(공감의 효과). 내담자가 경험하고 있는 어떤 애매모호한 상황과 유사한 상황에서 상담자가 경험한 감정에 대한 자기개방은 내담자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탐색하고 자각하게 할 것이다(직면의 효과). 또한 상담자가 얻은 통찰에 대한 자기개방은 내담자로 하여금 자기문제의 원인과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할 것이다(해석의 효과).
즉시성 반응과 자기개방은 운용하기에 따라 공감반영과 직면, 나아가서는 해석 기능까지 담당할 수 있다고 본다. 내담자와의 상호작용의 연계성 속에서 내담자가 현재 자신을 보고 있는 정도에 따라‘보아야 할 것’(자각하지 못한 감정이나 생각, 소원, 이것들 간의 모순이나 불일치, 자기의 진실을 봇 보게 만드는 방어책들, 나아가 문제에 대한 새로운 안목과 전망들에 대한 통찰)의 논리적 순서를 분별하여 상담자의 자기개방을 경유하여 우회적으로 지적함으로써 직면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담자의 내적 구조나 역동 자체에서 오는 저항 외에 상담자 요인에 의한 마찰의 부담을 최소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3. 공감과 직면: 기독교 상담 고유의 방법과 목표
지금까지는 공감과 직면의 기법을 통하여‘보게 해준다’는 기능적 관점의 전제 아래 일반 상담과 기독교 상담의 교집합 영역을 탐색하였다. 기독교 상담만이 가질 수 있는 신앙의 자원으로 공감과 직면을 어떻게 달리 구사할 수 있는지, 또한 그 두 날개를 휘저어 날아갈 수 있는, 기독교 상담만이 목표로 할 수 목적지는 어디인지 모색해 보고자 한다.
‘보게 해준다’혹은‘본다’는 관점에서 상담의 목표는 곧 무엇을 보게 도울 것인가 하는 질문과 통한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본다’는 것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형성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기독교 상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무엇이 진정 보는 것인가? 진정 본다면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보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1) 맹목-개안의 역동
태초에 인간이 사탄의 거짓 속임수에 넘어가,‘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하신 실과를 먹으면 혹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을까’아니 ‘하나님처럼 될까봐 혹 못 먹게 하신 것이 아닌가’의심하면서, 그 실과를 탐내다가 결국 먹어버린 그 날부터 인간은 소경이 되었다. 이제는 인간이 본다하나 자기 벗은 수치만 볼 줄 알게 되었지,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소경이 된 것이다. 소경이란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의해서 규정되는 인간 피조물의 본질이 말씀을 어김으로써 망가진 상태를 의미한다(마치 물에 넣어서는 안 되는 시계를 물에 넣어버린 것처럼). 이것은 인간이 자신의 감정이나 사고, 동기 또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연결 관계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을 뜻하는 심리학적 의미의 소경됨을 넘어선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소경됨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여 피조물이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할 그 자리에 이제 다른 것들, 곧 우상들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한 마디로, 소경됨은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초래된 영적 상태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부패한 본성을 가리킨다. 인간의 생각이 헛되어지고 미련해지고, 마음은 어두워져 스스로 지혜 있다고 주장하나 어리석어져, 하나님께 감사치도 아니하고 영광을 돌리지도 않는 증상(롬 1:21-23)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소경된 마음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스스로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밖에서부터의 개입이 없이는 스스로 소경됨을 알 길이 없다. 이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전적 은혜로 소경의 눈을 밝히는 사역(사 42:7)이다. 구속함 받아 눈을 떠 보게 된 자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 하나님의 말씀과 뜻으로 자기 마음을 채워가는 과정이 구속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죄의 유혹(deceitfulness)과의 싸움은 필연적이다. 이 싸움을 게을리 하고 자기만족에 빠질 때,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네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과 벌거벗은 것과 눈먼 것을 알지 못한다(계 3:17).”고 지적 받은 교회도 있다. 그러기에 교회의 지체에게 주어진 소명은, 죄의 그럴듯한 속임수와 위장에 사로잡혀 마음이 어두워져 완고하게 됨을 면하도록 서로 일깨우는 것이다(히 3:13). 이것이 바로 기독교 상담의 존재이유가 될 것이다.
안약을 사서 서로 눈에 발라 일깨우는 방법은 무엇보다 보는 것을 막는 장애물이면서 동시에 본다고 속게 만드는 위장 가면을 제거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전형적인 위장의 과정에 대해서는 소위 정신분석학적인 방어기제라는 개념 아래, 억압이나 투사, 부정, 합리화, 전치, 반동형성, 퇴행, 내사 등과 같은 마음의 무의식적 작용에 대하여 알려진 바 있다. 이러한 방어기제들은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못 보게 한다는 점에서는 죄의 속임수와도 어느 정도 상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점은 이 방어기제는 자기 속에 있는 자기기준 곧 내면화된 부모의 가치기준이라는 엄연한 검열체계에 의하여 자신의 감정과 동기에 작용하는 것이다. 이 방어기제는 순전히 주관적인‘심리적 현실’속에서 일들이다. 개인 내부의 인격의 여러 측면들(자아, 초자아, 본능) 사이의 갈등을 감소시켜, 될수록 고통을 덜 받으려고 하는 타협의 산물이다. 한마디로‘자기를 위한 자기에 대한 방어’곧 자기보존과 만족을 위한 갈등의 의식화에 대한 방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죄의 속임수에 의한 위장가면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될수록 하나님의 간섭을 덜 받고, 자기중심적이 될 수 있도록 자기의 마음에 요새를 만드는 작업이다. 하나님 없이도 부족함을 못 느끼도록 성벽을 쌓는 것이다. 기독교적 의미에서 방어는‘자기를 위한 하나님에 대한 방어,’곧 자기의 독립과 자율을 위한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의 개입에 대한 방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방어로서의 위장가면의 대표적인 예, 열 가지를 미국 웨스트민스터 성경적 상담학 교수인 Paul D. Tripp이 자신의 30년 상담경험을 통해 정리한 것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ix)
(1) 자기인식의 가면:“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들의 의견이나 사회적 지위나 역할, 대중심리학, 자기의 과거 경험 등을 거울삼아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 등과 같은 성경적 개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를 보는 기준으로 작용하지는 못하고 있다.
(2) 타인관의 가면:“남들이 잘 못 하고 있다. 따라서 변해야 할 사람은 그들이다.”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지 못하고 있다. 남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하는가 만을 자기욕구의 충족이라는 기준으로 보고 있다.
(3) 상황해석의 가면:“난 시험을 당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선택과 행위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거두고 있는 것이 자신이 심은 것에 대한 결과임을 못 보고 있다(갈 6:7).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들도 내 욕심대로 하려고 하면 시험이 된다.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도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을 보지 않고, 맛에만 신경 쓰면서 애굽의 음식과 비교하며 불평하면 시험이 된다. 맛만 따지는 자신의 죄의 몫은 보지 않고 만나 자체가 시험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4) 필요의 가면:“(그것)만 있었더라면 난 (이것)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의 문제의 원인을 무엇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회한과 핑계의 요새에 숨어서 자신을 대면하기를 피하고 있다.
(5) 자기통찰의 가면:“난 내 인생을 잘 분석하여 꿰뚫고 있다.”
지적인 자기분석이 꼭 지혜롭다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지혜롭다고 속고 있는 사람은 자기분석에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면 노기를 띤다. 오류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분석은 오히려 자기중심적으로 상황을 짜 맞추려는 욕구의 발로일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숨은 허물을 찾으려는 자야말로(시 19:12) 자신의 소경됨을‘보는 자’일 것이다.
(6) 가치관의 가면:“나는 인생에서 뭐가 정말 중요한지 알고 있다.”
머리 속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와 실제로 마음이 지배당하며 조종당하고 있는 가치 사이의 간격을 못 보고 있다. 하나님을 제일로 여긴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남들이 어떻게 나를 생각하는가, 인정하는가, 또는 대접하는가에 자신의 정체를 걸고 있다.
(7) 내담의 가면:“나는 지혜로운 상담은 잘 알아서 받아들이고 있다.”
자기 생각에 일치하고 동의하는 상담만 받아들인다. 상담을 통하여 변화보다는 지지만을 받기를 원한다. 변화란 괴로움의 제거를 의미할 뿐,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으로서의 변화는 원치 않는다.
(8) 신학적 지식의 가면:“난 이미 말씀대로 다 해 봤다.”
오랜 신앙생활로 성경말씀과 신학적 용어에 대한 풍부한 지식은 자신의 영적 미숙함을 보지 못하게 하는 눈가림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이나 행동이 신앙에서 나온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 진정한 영적 성숙은 말씀을 삶 속에서 경험한 자요,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서 말씀으로 연단을 받아 선을 분별하는 것(히 5:14)이다. 말씀에 대한 지식의 위장에 갇혀서 그것이 말씀을 경험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내담자의 삶에 진정으로‘작용하는 신학’(functional theology)은 그가 입으로‘고백하는 신학(confessional theology)’과 분리되어 있을 수 있다.
(9) 거룩성의 가면:“신앙적으로 할 거 다 했는데, 왜 계속 꼬이는지 모르겠다.”
종교적인 행위 몇 가지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율법적인 자기 의에 사로잡혀,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요구하시는 내적 기준을 채울 수 없음을 보지 못하며 따라서 그에 대한 애통과 절망도 없다. 사실 천국과 지옥의 문제를 제외하고,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지 절감하지 못하고 있다.
(10) 회개의 가면:“모든 걸 고백했으니 회개한 것이다.”
상담자에게 모든 걸 털어놓는 상담과정 자체가 내담자에게 자신이 지금 회개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사실 내담자는 자기고백을 통하여 자기가 자기 자신을 구원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 상담을 통하여 지지받고 위로받고 힘과 깨달음을 얻어 그것으로 자신을 스스로 어찌 해 보려고만 할뿐이다. 진정한 회개란 마음을 털어놓는 것을 넘어서 마음을 돌리는 것, 하나님의 부르심에 전적으로 항복하는 것이다.“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 하소서(시 139:23-24).”
이상 열거한 위장가면들의 공통된 점은 모두 자기에게 아첨하는 속성을 갖는다(시 36:2).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발견하거나 미워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마음의 어둠은 점차 깊어지고 가면은 요새화된다. 상담자의 임무란 내담자의 마음을 에워싼 요새의 소재를 파악하고 공략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상담은 영적 전쟁이다. 요새를 보도록 요구하는 질문(예:“하시는 얘기를 죽 들어보니 얘기 속에 (당신)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있군요.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어머니의 직장생활이 진정 (당신)의 약물중독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시는데 어떤 연유에서 (당신)은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고 느껴질까요?”)은 내담자를 긴장시키며 당혹하게 하며, 때로는 불쾌하게도 하고 분노하게도 한다. 내담자의 저항으로 인한 상담의 위기는 늘 도사리고 있다. 끝까지 참고 믿어주고 소망을 잃지 않고 위기를 변화의 기회로 만들어, 진리요 생명 되시는 그리스도께 순종케 만드는 것이 상담자의 과제이다. 이 일을 위해서 상담자는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옷 입어야 된다. 이 점에서 내담자 뿐 아니라 상담자에게도 상담은 신의 성품에 참예하기(벧후 1:4) 위한 연단의 과정이다.
2) 개안의 전략 및 목표
(1) 개안의 전략: 하나님의 관점 도입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이 상황의 무엇이 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꽉 붙잡고 있는지’그 소경됨의 역동을 이해하고, 과연 어디서 변화가 필요한지 찾아내야 한다. 이 일을 위해 내담자가 무엇을 느끼는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경청해야 한다. 특히 하나님께서 이 상황에 어떻게 관여하신다고 내담자가 생각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이에 대한 내담자의 자료는 직면의 소재가 된다. 기독교 상담에서 직면이란, 내담자가 자신의 삶을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는 시야에 하나님의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다x). 즉, 상담자는 내담자의 주관적인 세계로 수용적인 태도로 들어가되, 하나님의 관점(또는 복안, agenda)을 갖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논문서두에 공감과 직면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제기한 질문("하나님편을 들 것인가 내담자편을 들 것이냐")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양자택일의 방식으로 제기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다. 이는 공감과 직면에 대한 대안적 전망을 제시한다. 즉 공감과 직면은 병행적인 것으로‘내담자의 편에 서되 하나님 편을 향하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다.
보게 해준다는 기능에 있어서 서로 상통하는 공감과 직면은 이제 어떻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제 기능을 수행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도록 공감과 직면기법을 구사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질문은 내면을 탐색하고 생각을 유도하는 방향등의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도록 하기 위한 구체적 질문의 예를 들면, 내담자가 만성적으로 사용하는 틀(“남편이, 부인이, 부모님이, 남들이 이렇게 저렇게 말하기 때문에, 생각하기 때문에, 원하기 때문에”)을 깨고 “하나님은 지금의 나를 어떤 심정으로 보고 계실까, 뭐라고 말씀하실까, 하나님의 자녀된 나에게 무엇을 목표로 하실까, 내가 무엇을 마음 속 깊이 소원하기를 바라시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런 질문들은 내담자가 문제의 와중에서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없는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들이 내담자의 마음속에 내면화되어 내적 목소리(inner voice)가 될 때, 때론 하나님의 공감과 위로로, 때론 마음을 비추는 탐조등으로 지속적으로 작용한다. 하나님의 공감으로 담대하게 되어 힘을 얻을 때 탐조등을 비추어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 소견대로 또는 자기 욕심대로 움직인 마음의 모략을 볼 수 있게 된다. 마음을 모략을 본다는 것은 문제 상황에서의 자기의‘몫’을 깨닫는 것을 뜻한다. 지금 자기가 거두고 있는 것에 대하여 자기가 심은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 앞에서 고백할 때, 자기‘몫’에 해당하는 소행을 중단 내지는 바꾸려는 결단이 있게 된다. 이 결단은 고집이 녹아지는 급격한 마음의 변화이다. 이것은 인간의 통찰과 의지력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보지 않는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간절히 구원을 바랄 때 일어나는, 성령의 능력에 의한 사역이다. 성령의 작용에 의하여 움직인 마음의 결단은 지속적으로 성령의 일과 생각을 따르는 회개로 이어진다. 개안의 핵심기술로서 직면의 과정을 P. Tripp의 제안에 따라 요약해 보면 먼저, 질문에 의한 탐색과 고려 → 자기 몫을 인정하는 고백 → 자기 몫에 해당하는 소행을 바꾸려는 결단 → 영의 생각을 따르는 회개(돌아섬) 등의 4단계로 구분지어 볼 수 있다xi). 기독교 상담(특히 성경적 상담)에서의 직면은 회개까지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일반심리 상담의 직면(모순이나 불일치 지적)이나 해석(시공에 걸친 의미연결, 원인설명, 새로운 관점 획득)이 비교적 인식적인 것에 반하여, 의지적이고 실천적이다. 또한 그 변화의 수준과 깊이에 있어서 항상 인간의 본질문제(옛사람과 새사람)xii)를 건드린다는 점에서 근원적이다. 반면 일반심리 상담에서 큰 비중을 갖고 있는 해석이 독립된 기법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직면에 포함되고 있다. 여기서 Jay E. Adams의 권면적 상담의 영향을 또 한 번 보게 된다. 직면과 해석의 순서에 있어서 일반심리 상담에서는 직면으로 도전하여 변화에 대한 동기를 유발시키고 그 후 해석이 제시된다. 반면, 성경적 상담에서는 해석기법은 전면에 부각되지 않고, 내담자에 대한 개념화(해석 작업)에 근거하여 변화의 핵심을 건드리는 직면과정 속에 묻혀 있다. 이렇게 보면 일반 상담에서 직면은 상담자가 취하는 의사소통의 한 양식인 반면, 성경적 상담에서 직면은 통찰에 의한 변화의‘과정’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석과 직면, 나아가 권면은 기법적 관점에서 각기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가? 목회 상담의 전문가인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내용을 통하여 기법구분의 지평을 얻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등으로 나뉘어 분쟁의 문제를 안고 있을 때 바울 사도가 편지를 통하여 상담한 내용을 기술의 관점에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문제상황: 분쟁: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등(고전 1:11, 12)
→ 직면:“그리스도께서 나뉘었느냐,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누구 이름으로 세례 받았느냐(1:13)?”
→ 해석:“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우리는 주께서 각각 주신 은사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일 뿐이다. 심은 나나 물을 준 아볼로나 아무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라나게 하신다(3:5,6).”
-“각각 자기 일한대로 자기상을 받을 것이다(3:8).”
-“너희가 하나님의 밭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인 셈이다(3:9).”
→ 권면:“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를 닦은 건축자에 불과하다. 다만 그 위에 다른 이가 어떻게 세울는지 주의를 기울이라(3:10)!”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다 너희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3:21-23).”
상기 분류에 입각해 보면, 상담기술로서의 직면은 내면의 핵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맹점의 문을 두드리는 질문이나 진술로서 영적 도전의 효과를 지닌다. 이어 나타난 해석은 문제에 대한 재해석이며 새로운 관점이나 진리를 열어 보여준다. 이를 위해 선포나 예언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권면은 돌아설 방향이나 진로를 명령의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이 명령에 해석이 첨가되고 있다. 바울 사도의 상담 내용 중 특히 해석은 도전의 근거를 제시하며 내담자의 행위의 의미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해석을 전 편지에 걸쳐 체계화한 것이 결국 바울신학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볼 때 기독교 상담에서 내담자의 삶의 정황들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해 주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자명해 진다.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 진리에 대한 체계적 지식과 신앙, 곧 신학은 해석에 있어 중요한 자원이 된다. 이 점에서 직면이나 해석을 위한 성구인용은 성경을 보는 신학적 안목에 기초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신학적 해석을 직접 시도하지 않더라도, 상담주제에 관련된 성경이야기(비유나 성경인물의 라이프 스토리)나 성구(잠언이나 시편의 고백, 찬양 또는 기도 등)의 도입은 죄를 지적하며 용서를 선포하며 때론 공감적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때론 문제를 새롭게 보는 시각을 가져다준다xiii). 상담 중 성경 인용의 의도와 효과에 대하여 Meyer-Blanck가 제시한 다섯 가지 범주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xiv). 이 범주들을 보면, 성구인용을 통한 직면은 논박이나 선포의 양식을 취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① 선포적: 죄의 고백이나 회개를 촉구하거나 죄 용서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나 말씀 선포. - 공감적: 고통스런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하거나 탐색하게 하는 성구(시편) 인용.
② 도전적: 기존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며,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보게 하기 위한 성구인용.
③ 대안적: 일견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성구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마 6:27)!”를 동시에 인용함으로써 주관적 성구해석의 자의성 및 그 속에 숨겨진 동기를 깨닫게 하려는 의도.
④ 논리적: 죄, 구원, 죽음, 재림, 부활 등에 대한 기독교 교리를 설명하기 위한 성구인용.
개안을 위한 공감과 직면이 상담에서 발휘하는 기능과 효과에 있어서 일반심리 상담과 기독교 상담 사이에 차이점이 발견된다. 일반심리 상담에서의 공감이나 직면은 상담자가 거울이 되어 내담자의 감정을 반영하거나 모순을 지적한다. 그러나 기독교 상담에서의 공감이나 직면은 하나님의 말씀이 거울이 되어 거기에 비추인 내담자에 대하여 상담자가 반응한다. 이 점에서 볼 때, 기독교 상담에서의 공감과 직면은 인간적인 의사소통의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으나 이를 초월한다. 즉 성경말씀을 기초로 하나님의 관점을 상담에 가져옴으로써 상담자는 하나님의 공감과 직면을 전달하는 매개자가 되며, 하나님께서 상담의 주체가 되신다. 이 때 내담자는 인간 상담자가 공감하고 직면을 촉구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공감하시며 직면을 촉구하시는 것으로 느낀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 상담과정의 독특성과 효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상담에 말씀으로 임재하시고 영적 효력을 미치심으로 말미암아 기독교 상담은 성도 간 영적 교통의 장(場)이 된다.
(2) 개안의 목표
눈을 떠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성경에서 눈을 뜬 사건을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이야기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이야기와 욥의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성경은 인간이 구원의 은혜로 꼭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먼저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이야기를 보면, 십자가 사건 후 슬픔과 회의에 가득 차 각자 제 갈 길로 가던 제자들은 노중에 만나 동행하던 사람이 누군지 눈이 가리워져서 알아보지 못했다. 비록 제자들이 선지자들의 말을 마음에 더디 믿고 미련하다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풀어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떼신 떡을 받자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 그들이 눈을 떠서 보게 된 것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눅 24:13-34). 그리스도를 본다는 것은 동시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다. 베드로도 주님을 알아보았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무릎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상담의 맥락에서 내담자가 자기 정체를 깨닫는 과정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을 통하여 요새 뒤에 숨겨진 마음의 깊은 모략(잠 20:5)을 깨닫는 것이다. 그 모략을 만들어낸 뿌리 깊은 죄의 근성, 그 죄의 법에 사로잡혀서 영적 싸움을 싸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죄의 세력에서 해방된 자신을 보아야 한다(롬 7:14-8:2). 이것이 그리스도를 보는 것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자신을 보는 것이다. 이러한 직면이 있을 때, 성령을 따라 성령의 생각을 할 수 있는 회개가 가능해진다.
욥의 이야기를 상담자의 관점에서 볼 때, 고난의 전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시며 무엇을 목표로 하시는지, 하나님의 상담 기법과 목표를 배울 수 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욥 1:8)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느냐”는 사탄의 질문(1:9)에서 그 긴 고난의 여정을 걷게 된다.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 길 없는 욥은 자신의 허물과 죄 때문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의로운 자신을 대적으로 여기시는지(13:22, 23),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결국 무익한 것인지(33:9), 도대체 의로움의 유익은 무엇인지(35:1, 2) 한탄한다. 이 때 하나님께서 하신 상담, 곧 하나님의 관점을 심어준 직면용 질문들(38-42장)은 다음과 같다:“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38:2)?”“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38:4)?”“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과 변론하는 자는 먼저 대답하라(40:2).”“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40:8),”“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였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41:11)”하나님이 하신 상담의 효과는 어떠했는가? 욥에게 고백과 회개가 일어났다:“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오리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40:4).”“주께서는 무소불능 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던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 바로 내가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나이다(42:2, 3).”“내가 주께 귀로 듣기만 하였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나이다(42:5, 6).”이제 욥이 눈을 떠 보게 된 것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섭리를 보게 된 것이다. 고난을 통하여 단련을 받아 정금같이 만드시는 하나님의 구속과정을 알게 된 것이다(23:10).xv)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인생이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지고의 목표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홀로 부족한 것이 없으면서도 인간을 창조하시고 상대해 주시고, 나아가 이 피조물이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벧후 1:4) 것까지도 목표로 하고 계시니, 이토록 지극한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을 보라고 성경은 거듭 말하고 있고, 상담은 이를 내담자가 깨닫도록 도우는 것이다.
(3) 상담자의 개안
내담자의 개안을 목표로 하면서, 그럼 상담자는 온전히 보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위에 기술한 맹목과 개안의 역동은 상담자 내부에서도 일어난다. 내담자가 눈떠서 보아야 할 것은 상담자도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상담자와 내담자는 나란히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 그리하여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도록 피차 권면해야 할 관계이다. 상담자도 내담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자기의 등을 자신은 보지 못하고 손이 닿지 않으므로 누군가 닦아주어야 하듯이, 상담자와 내담자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이다.
상담자가 본다고 하면서 사실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상담할 때 자칫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둘 모두 구덩이 빠질 수도 있다. 내담자의 감정(우울, 두려움, 미움, 불평, 적개심)이 상담자를 전염시켜 소진시킬 수 있고, 상담자의 율법주의적 이분법적 사고는 오히려 내담자를 정죄하는 것으로 작용하여 낙심시킬 수도 있다. 또는 문제 상황 속에서 함께 빠져 문제해결에만 골몰하여 정작 기독교 상담의 목표와 복안, 곧 마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다시 붙잡는 일,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일, 신의 성품의 열매를 맺는 일등을 놓칠 수 있다. 상담자의 맹목의 문제와 개안의 과제로 인하여 소위‘교육’상담이나 상담 수퍼비젼도 바람직한 상담자 훈련의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아울러 상담자들 간의 ‘동료’집단 상담xvi)도 서로 돕고 배울 수 있는 상담의 한 형태가 될 것이다.
상담자의 개안을 논하면서 그러면 어디까지 얼마만큼 보아야 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바울사도의 자기개방을 인용해 보면, 그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고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도 보는 것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다고 했다. 그러나 주를 직접 대면하여 볼 때 주께서 자신을 아신 것같이 주를 온전히 알 것을 소망하였다(고전 12:11, 12). 비록 상담자라 할지라도 오직 종말론적 소망 가운데 눈떠가고 있는 구원의 도정에 있을 뿐이다. 이 도정에서 기독 상담자의 자기개방은 결국 자신이 경험한 만큼의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증거 하는 것이다.
Ⅲ. 맺는 글
앞으로의 연구과제: 해석과 직면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기독교 상담에서 공감과 직면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개안(開眼)의 관점에서 상통하며, 상담과정의 역동 속에서 내담자에 맞추어 그 용량을 조절하는 문제임을 역설하였다. 아울러 직면은 상담자의 의사소통의 기법으로서, 또 변화의 과정으로서 기독교 상담의 목표를 실현시키는데 어떤 기능을 발휘하는지 살펴보았다. 즉, 내담자의 맹점을 파악하고 그 맹점의 요새를 파하기 위한 기술과 전략으로서 먼저 질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관점을 주입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나아가 눈을 떠서 보아야 할 것을 기독교 상담의 목표로서 제시하였다. 맹목과 개안의 역동을 살펴보면서 새롭게 부각된 연구과제는 과연 해석과 직면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실천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실천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상담학적 논의를 전제로 할 때만 제기 될 수 있는, 일종의 논제이다. 해석과 직면의 조절 문제는 먼저 이 두 주제를 동등한 비중으로 다룰 것을 요구한다. 내담자의 정체에 대한 개념화과정(해석)과 변화되어야 할 미래목표를 향하여 돌아서는 회개과정(직면)이 공정하게 논의되어져야 한다. 만약 기독교 상담학이 해석과정에 비중을 두게 되면 신학적(또는 신학화된 심리학적) 해석학을 토대로 의미구성에 주력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이해의 주체가 되는‘자기’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 질 것이다. 반면, 직면을 통한 회개에 주력한다면 성령의 힘에 의지하는 것에, 의미이해보다는 축복과 은혜에, 성령과 교통하는 영혼에 초점이 맞추어 질 것이다.xvii) 지금까지 복음주의 입장의 기독교 상담학 진영에서 해석과정보다는 직면과정이 더 강조되고 있는 것도 방금 기술한 근거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독교 상담의 고유성과 정체성이 성경인용 그 자체에 있지 않은 것이 너무도 자명한 것처럼, 먼저 내담자의 삶과 그에 대한 이야기, 나아가 그것을 통하여 정체를 개념화하는 작업에 있어서 진정 기독교적 해석의 원리와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점도 적실한 직면을 위하여 앞으로 계속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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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연. “바울의 인간론: 옛사람과 새사람.” 석사학위논문: 합동신학대학원.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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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ll, Clara E. O'Brien, Karen M. Helping Skills: Facilitating Exploration, Insight, and Action, 주은선 역. 「상담의 기술」. 서울: 학지사. 2001.
․ Bukowski, Peter. Die Bibel ins Gespräch bringen: Erwägungen zu einer Grundfrage der Seelsorge.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 1994 - 5. Auflage 2004.
․ Hartley, John E. The Book of Job (NIC). Grand Rapid: Eerdmans. 1988.
․ Luther, Henning , Religion und Alltag: Bausteine zu einer praktischen Theologie des Subjekts. Stuttgart: Radius-Verlag. 1992.
․ Manfred, Josuttis. Segenskräfte: Potentiale einer Energetischen Seelsorge. Gütersloh: Chr. Kaiser Gütersloh. 2002.
․ Meyer-Blanck, Michael.“Entdecken statt Verkündigen: Neue Chancen für die Bibel im Seelsorgegespräch”In Seelsorge im Plural: Perspektiven für ein neues Jahrhundert. Uta Pohl-Patalong. Frank Muchlinsky(eds.). Hamburg: E.B.-Verlag. 1999.
․ Tripp, Paul D.“Opening Blind Eyes: Another Look at Data Gathering,”The Journal of Biblical Counseling 14. no. 2 (1996)
․ Tripp, Paul D. “Data Gathering Part 2: What the Counselor Brings to the Process.”The Journal of Biblical Counseling 14. no. 3 (1996)
․ Tripp, Paul D. "Introduction to a Biblical Counseling Methodology." D.Min. course lecture manuscript: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2004.
각주
i) Clara E. Hill, Karen M. O'Brien, Helping Skills: Facilitating Exploration, Insight, and Action, 주은선 역,「상담의 기술」(서울: 학지사, 2001), 45-59. Hill은 상담과정의 3단계 모델에서 탐색의 과정 속에 관계형성까지 포함하고 있다.
ii) 이장호, 금명자, 「상담연습교본」 (서울: 법문사, 1993), 34
iii) 이장호, 금명자, 50-60. 이 책에서는 공감의 수준을 5단계로 나누고 있다. 가장 깊은 수준의 공감은 내담자의 말 속의 부정적 내용이나 감정 속에서 내면의 긍정적 성장 동기까지 반영해주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iv) Hill, O'Brien, 335
v) Henning Luther, Religion und Alltag: Bausteine zu einer praktischen Theologie des Subjekts, (Stuttgart: Radius-Verlag, 1992), 45, 56. Luther는 믿음의 본질을 경계(Grenze)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계를 넘어섬’이 일상의 삶 속에서, 나아가 삶의 이야기(biographie) 속에서 일어나도록 돌보는 과제를 실천신학, 특히 목회 상담이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vi) 이장호, 금명자, 128.
vii) 누가 상담자의 역전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우랴. 역전이도 상담자가 정신만 차리면 전이해석의 자원이 된다. 그렇게 보면 역전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역전이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역전이가 없을 수는 없으나, 다만 그 미혹에서 적어도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모든 상담자는 ‘교육 상담’으로 솔선수범 훈련을 받지 않는가.
viii) 상담자의 자기개방은 내담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담자가 우월하다. 문제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해야 한다. 동시에 상담의 초점이 상담자에게 쏠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Hill, O'Brien, 362-8
ix) Paul D. Tripp,“Opening Blind Eyes: Another Look at Data Gathering,”The Journal of Biblical Counseling 14, no. 2 (1996): 6-11
x) Paul D. Tripp,“Data Gathering Part 2: What the Counselor Brings to the Process,”The Journal of Biblical Counseling 14, no. 3 (1996): 8-14
xi) Paul D. Tripp, “Introduction to a Biblical Counseling Methodology” (D.Min. Diss: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2004), 33-8.
xii) 김수연, “바울의 인간론: 옛사람과 새사람” (석사학위논문: 합동신학대학원, 1999), 19-20
xiii) Peter Bukowski, Die Bibel ins Gespräch bringen: Erwägungen zu einer Grundfrage der Seelsorge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 1994-5. Auflage, 2004), 55-66.
xiv) Michael Meyer-Blanck, “Entdecken statt Verkündigen: Neue Chancen für die Bibel im Seelsorgegespräch”In Seelsorge im Plural: Perspektiven für ein neues Jahrhundert, Uta Pohl-Patalong, Frank Muchlinsky (eds.) (Hamburg: E.B.-Verlag, 1999), 27-35. 저자는 Peter Bukowski(1994)에 근거하여 상담기법과 효과의 관점에서 재분류를 시도하고 있다.
xv) John E. Hartley, The Book of Job (NIC), (Grand Rapid: Eerdmans, 1988), 534, 539
xvi) 김경민 외 11인, 「집단 상담 사례연구」(서울: 학지사, 2002). 전문 상담자들이 동료 집단 상담을 시도한 예로, 12회에 걸친 집단 상담 축어록이 수록되어 있다.
xvii) Manfred Josuttis, Segenskräfte: Potentiale einer Energetischen Seelsorge (Gütersloh: Chr. Kaiser Gütersloh, 2002), 7-11. 이 책에서 Josuttis는 성령의 능력에 의존하는 초월적 상담을 제안하고 있다. 성령의 능력은 모든 이론과 방법론을 뛰어 넘어 치유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성령의 힘을 일으킬 수 있는 의식이나 상징 및 성도 간 교제의 장에 대한 종교 현상학적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성령의 힘에 의한 상담(=energetische seelsorge)으로 상담의 초점이 정체(identität)에서 회개(koversion)로, 자기(Selbst)에서 영혼(seele)으로, 의미(Sinn)에서 축복(segen)으로, 신학(theologen)에서 성령(Geistlichen)으로 방향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Abstract
Empathy and Confrontation in Christian Counseling
Kim Soo-Youn(Ph.D.)
The uniqueness of christian counseling is discussed in terms of skills and process. The counseling skills such as empathetic mirroring and confrontation are posed as antithesis. It is argued, however, that their common function consists in opening blind eyes or awareness. The balance between them is tuned by the counseling process which develops in the midst of counselee's blindness. The dynamics of spiritual blindness are described in terms of sin's deceitfulness and the defense against God for self-sufficiency and autonomy. The counselor's questions asked from God's perspective and the citing the Bible as God's Words are suggested as powerful mirroring as well as confrontation skills. It functions as a searchlight in exploring the counselee's heart, which contributes to opening eyes. What to see as a result of opening eyes is dealt with as the theme critical for establishing the identity of christian counseling. For further study it is suggested the implication of weighing interpretation against confrontation, and vice versa.
Key Words: empathy, confrontation, christian counseling, opening eyes, sin's deceitful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