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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성령으로 행하라

☆오늘의 설교☆
(8월21일 목요일)

 

♡성경:갈라디아서 5장 16~26절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성령으로 행하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쓴 릭 워렌은 그리스도인에 삶의 다섯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1.내 삶의 중심을 무엇을 삼을 것인가?
2.나는 어떤 성품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3.내 삶을 어디에 기여해야 하는가?
4.내 삶은 어떤 전달 도구가 되어야 하는가?
5.내 삶의 동역자는 누구인가?
그리스도인이란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들은
안디옥 교회 성도들입니다(행 11:26).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며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와 같이,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헛된 영광을 구하기 위해 서로 격동하거나 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 일부 교단과 교회에서는 편협적이고 일반적인 주장으로 성령에 대한 오해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방언을 하지 못하면 성령 받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여 방언을 받도록 시도하는 것 등입니다. 그러나 방언은 여러 자기 은사 중 하나이며 우리 성도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가지고 맡은 일에 충성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을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살펴봄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육체의 일을 버리는 삶(16∼21절)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육체는 영에 반대되는 것으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17절)고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복음으로 자유 함을 얻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령을 따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먼저 육체의 일을 버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육체의 일로 인하여 사단으로부터 유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명령을 받은 하와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 최초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산 죄악 된 인간의 모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이며 그 결과로 인간에게는 사망이 찾아온 것입니다(창 2:17).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성자 하나님으로 오신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담과 같은 사단의 똑같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마 4:6).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8-9).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기도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신 것입니다(마 4:1). 이것은 다시 말해서 첫 번째 아담이 육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범죄 함으로 우리 인간에게 사망이 찾아왔고,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따라 육체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인이 육체의 일을 버리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유혹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아담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꼭 같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육체의 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2.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22∼23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의 일(갈 5:19-21)을 버리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을 통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성품입니다. 제일 먼저 세 가지 사랑과 희락과 화평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열매이고, 두 번째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꼭 있어야 맺어지는 열매이며, 세 번째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모든 열매를 우리의 삶 속에서 맺는 아름다운 성품을 갖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맺는 열매.
첫째,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성품인 사랑을 우리의 삶 속에 정용 시킨다면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가족에게, 이웃에게, 성도에게, 그리고 나그네와 외국인에게까지, 더 나아가서는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까지도 사랑을 실천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사랑은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칭찬을 받고 사랑을 받는 데 초점이 아니라 내가 남을 위해 희생을 하는 데 있기 때문에 사랑은 말로나 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랑의 품성을 잘 개발하여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둘째, 희락입니다.
내가 희락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죄책감이 있으면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아 가며, 그 결과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단절이기 때문에 고통과 절망 가운데 빠져서 희락을 상실하게 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항상 기뻐라하”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확실한 희락의 근원은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희망이 이 세상에만 머무를 때 우리는 불안하고 좌절하고 절망하지만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면 기쁨으로 찬양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화평입니다.
화평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자신을 겸손하게 하고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교만하여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려고 할 때 마음에 화평이 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자기의 현재 주어진 상황과 여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화평을 얻을 수 있습니다(빌 4:6).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진정한 화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생각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여 그를 기쁘시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나 삶을 통하여 자신은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화평을 심어 줄 수 있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웃과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열매.
첫째, 오래 참음입니다.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신실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를 바라보고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면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끝까지 인내하며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히 12:1).
그리고 인내의 마지막은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임을 믿고 함께 가는 동역자가 있어야 합니다. 마라톤을 혼자 달릴 때 힘이 들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달리면 힘을 얻는 것처럼 신앙의 경주도 반드시 열매를 거둔다는 확신을 갖고 이를 위해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인내하면서 아름다운 사역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둘째, 자비입니다.
자비의 열매를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내려면 그동안 내가 받았던 여러 가지 복을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조용히 묵상해 보면 너무나 감사할 것들을 많이 느낄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동기가 부여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는 명령에 따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황과 사물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내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어려워서 남에게 자비를 베풀기가 힘들지만 그리스도가 본을 보였던 것처럼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바라보게 되면 자비를 키워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어야 하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 조금이라도 자비를 베풀 수 있는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눅 6:36).
 
셋째, 양선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5장 8-9절에서 그리스도인의 되기 전의 모습을 어두움으로 설명하면서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으니라”고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빛 된 자녀인 그리스도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을 행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 10장에서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는 율법사에게 강도 만난 자에게 자비를 베푼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설명하십니다.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인가 물으시고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고 선행을 즉각 실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10).
 
3) 자신과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열매.
첫째, 충성입니다.
충성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고전 4:2)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가 있고 그것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주어졌는데 그것을 기쁨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충성을 다한 자에게 면류관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까지 충성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청지기이기 때문입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2).
 
둘째, 온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 주신 성품 중의 하나가 온유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죽으시면서도 원수를 향해 사랑의 메시지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유의 열매를 맺기 원한다면 예수님의 성품을 본받기 원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온유는 하나님께 겸손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성품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온유한 삶을 계속 유지하려면 내게 잘못한 사람에 대해서도 대적하거나 보복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씁하시니라”(롬 12:19

 

셋째, 절제입니다.
성령의 아홉 번째 열매인 절제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성장시켜 나가야 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바울도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절제를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덕을 끼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절제가 있는 곳에 화평이 있고 절제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와 가까워질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향력 있는 교회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에서 지도자로서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봉사를 할 수 없고 봉사를 한다고 해도 인간적인 감정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부딪히거나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훈련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을 통하여 성령 충만함으로 여기에서 언급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풍성히 맺어야 하겠습니다.
 
3. 헛된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24∼26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세상의 명예나 재물 그리고 권력 등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기 전의 우리의 모습은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었으며, 자유함도 없었고 소망도 없었으며 이 세상과 마귀와 육체의 욕심에 사로잡혀 세상의 본질대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으며 세상의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헛된 영광을 추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였습니다(엡 2:1-3). 사도 바울이 왜 에베소 교인들에게 과거 그들의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까? 먼저는 그들에게 이러한 영향 아래 있던 상태에서 건져내어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음은 이제는 더 이상 그러한 상태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운 자녀답게 살도록 권면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이나 악한 세력 그리고 육체의 욕심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고 성령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아서 그리스도에 의해 지배 받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자기중심의 생황에서 하나님 중심의 생활로 바뀌는 삶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끊임없이 이러한 세상의 육체의 일 때문에 유혹받고 힘들어하고 때로는 넘어지고 낙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 사람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옛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투기하지 말지니라”(26절)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며(24절), 그것이 바로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는 것입니다(25절).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인데 사도 바울은 이미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아니하면 언제든지 이 세상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의 헛된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며 날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므로 육체의 일이 아닌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않고 사도 바울과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 받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고전 10:32-33).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결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편지”(고후 3:3)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사”(고후 5:20)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마 5:13-16)입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교훈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너희 빛을 모든 사람에게 비추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아름다운 성품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누구의 인도와 지도를 받느냐에 따라서 어떤 영향력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일을 버리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멋진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가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예하고 있기 때문이라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3-6). 아멘. ✞